모짜르트(Johann Chrysostom Wolfgang Amadeus Mozart)는 1756년 1월 27일 현재 오스트리아(당시 신성로마제국) 잘츠부르크(Salzbrug)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짜르트(Leopold Mozart)'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교육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모짜르트가 그토록 추앙받는 음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정 환경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모짜르트는 아버지가 누나 '난넬(Nannerl)" 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법을 터득하는 등 어려서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가 8살 되던 1762년부터 그의 가족은 유럽 지역을 여행합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모짜르트는 위대한 음악가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1764년부터 1년간 런던에서 머물며 만난 바흐(Johann Christian Bach)는 모짜르트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라고 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모짜르트는 1773년부터 잘츠부르크 궁중 악단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이 때 그는 '교향곡, 소나타, 현악 4중주, 세레나데,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게 되며, 그가 21살이 되던 1777년에는 피아노 협주곡 K.271을 작곡하여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모짜르트는 잘츠부르크 악단에서의 낮은 보수와 여행을 자주하는 모짜르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대주교와의 갈등으로 인해 1777년 8월 악단을 사직하고, 파리에 머물게 됩니다. 파리에서 앨로시아 베버(Aloysia Weber)라는 가수와 한 때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때, 파리에 머물면서 작곡한 "A minor piano sonata K. 310/300d", "Paris Symphony (no. 31)" 등은 가장 유명한 그의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파리에 머물던 모짜르트는 1781년 오스트리아의 빈(Wien)으로 옮겼으며, 이듬 해 8월엔 콘스탄체 베버(Constanze Weber)와 결혼을 합니다. 또 1782년엔 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출(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후 모짜르트는 자신이 쓴 피아노 협주곡을 스스로 지휘하고 협연하게 됩니다.
이후 작곡한 그의 작품들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돈 조반니(Don Giovanni)',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 은 최고의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빈에 머물던 모짜르트는 당시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년 3월 31일 - 1809년 5월 31일)과도 어울리게 되는데, 당시 하이든은 모짜르트의 아버지에게 "하느님 앞에 맹세하건대 당신의 아들은 내가 들어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곡가입니다. 그에게는 감각이 있고, 게다가 그는 가장 뛰어난 음악적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극찬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모차르트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프리메이슨 단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 피리의 주제는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네요.
살아 생전 다양한 장르에서 약 600여곡의 작곡을 했던 모짜르트는 그의 미완성곡 '레퀴엠(Requiem)'을 작곡하던 1791년 12월 5일, 35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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