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그 우선, 당연하겠지만, 앱을 실행했을 때 꺼지거나 또는 멈추는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거절된다고 합니다. 등록 전에 아이폰 운영체제 버전별로 테스트를 잘해서 등록하라고 하네요.
2. Human Interface 가이드라인 아이폰 개발자라면, 애플에서 제공하는 Human Interface 가이드라인을 모든 항목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숙지하라고 하네요. 이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을 경우, 반드시는 아니지만(아무래도 UI는 주관적인 부분이다 보니), 경우에 따라 거절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3. 아이콘 아이튠즈에 애플리케이션을 등록할 때는 아이콘을 512*512 사이즈와 57*57(114*114) 사이즈 두 종류를 등록하게 되어 있죠. Human Interface 가이드라인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 두 아이콘의 이미지가 차이가 있으면 등록이 거절된다고 합니다.
4. 인터넷 연결 만약에 인터넷 연결이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이라면, 네트워크 접속이 안되었을 때 네트워크 접속이 안되어있다는 안내메세지를 알려주는 게 좋다고 합니다. 이런 예외 처리를 하지 않고 그냥 '로딩중' 이미지가 계속 뜬다거나 '나중에 다시 시도해주세요'라고 하면 거절될 수도 있다네요.
5. Device Capabilities (장치별 환경 고려) iOS기반의 애플리케이션은 아이폰과 아이팟터치, 아이패드에서 구동되는데요, 이 때 각 디바이스별 환경을 잘 고려해서 개발을 해야 한다네요. 예를 들면, 만약 애플리케이션에 진동을 활용하는 기능이 있다면, 아이팟터치 1세대와 2세대는 진동기능이 없는만큼, 지원대상 하드웨어 목록에서 빼던지 또는 진동 기능을 빼던지 해야 한다네요. 이 역시도 거절 사유가 된다고 합니다.
6. Excessive Bandwidth Usage (데이터 사용량 고려) 사용자 입장에서는 데이터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앱을 이용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통신비용도 나갈 뿐더러, 배터리 소모량도 높아지니까요. 애플의 앱 리뷰팀도 이 점을 고려한다고 하는데요, 5분동안 4.5MB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애플리케이션이 동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를 테스트해보려면 설정 > 일반 > 사용량 에서 사용량을 초기화한 후에 애플리케이션을 5분간 실행해보면 체크해볼 수 있답니다.
7. 버튼 이미지의 일관성 앱 개발시에 애플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버튼 이미지들을 사용하려면 Human Interface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능의 일관성을 준수해서 써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거절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하네요.
8. 네트워크 접속 오류 네트워크 검색시 false positives(?)를 보내면 안된다고 합니다. 애플의 'reachability' 에 버그가 있기 때문이라지만, 애플 리뷰팀에서 이를 확인할 경우 거절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9. 라이트 버전 라이트 버전에 대한 규칙은 명확하게 나와있지는 않지만, 버튼이 보여지는 데 라이트 버전이라고 해서 동작을 안한다던지, 또는 버튼을 누르면 구매를 유도하는 경우에도 역시 거절될수 있다고 합니다.
10. OS 호환성 앱을 등록할 때 만약 OS 3.0 버전 이상에서 동작한다고 해놓았을 경우, 반드시 그 이상 버전들에서 잘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등록해야 한답니다. 보통 앱 리뷰어들은 가장 최신 버전의 OS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특히 가장 최신 버전에 대한 테스트를 꼭 해보라고 하네요. 물론 작동하지 않으면 등록이 거절되겠지요.
11. 정치인/연예인 풍자나 저작권 침해 앱스토어의 앱 개발 가이드라인에서는 분명하게 아이튠즈 설명이나 앱 내에 공인을 풍자하는 내용을 넣으면 안된다고 밝혀져 있답니다. 또, 최근에는 앱 내의 콘텐츠 중에 저작권을 침해하는 내용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주의깊게 본다고 하니 등록 전에 꼭 검토해보시고 등록해야 겠습니다.
12. Interpret Code Restricted 소스 코드를 다운로드 받아 실행시킬 수 있는 앱 역시도 등록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만약 이게 된다면 아이폰에서 플래시나 자바스크립트 등도 구동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13. 복권 및 콘테스트 내기나 복권, 콘테스트 같은 콘텐츠를 담은 애플리케이션은 등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당 애플리케이션의 운영 규칙이 있어야 하며, 운영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개발자(개발사)에게 있고, 애플은 어떤 책임도 없다는 내용을 공지해야 한다고 하네요. 복권같은 앱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신기합니다.
14. 가격정보 앱 내에서는 가격에 대한 정보가 표시되면 안된다고 합니다. 이유는 각 나라별 통화 단위에 따라 표시되는 액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예를 들어 애플리케이션 콘텐츠의 구입 가격이 0.99$ 이라고 해놓으면, 유럽의 경우 0.99$을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0.7유로를 결제하기 때문에 혼동을 줄 수 있다는 거죠.
15. 앱 설명과 스냅샷, 키워드 앱 설명과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이 일치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과 다른 정보를 앱 설명에 적어놓으면 안된다는 내용이죠. 이는 스크린샷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구요, 키워드도 전혀 관련없는 키워드를 적어 넣으면 거절될 수 있다고 합니다.
16. 결제 커머스와 관련된 기능을 구현하면서 다른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경우 애플에서 엄격하게 통제한다고 합니다. 결제를 구현하려면 일단 in-app purchases를 이용하라고 하네요.
17. 불쾌한 내용 포르노나 욕설 등을 제공하는 앱은 사용 가능 연령을 17+로 해도 거절된다고 합니다. 다른 사용자들이 다소 불쾌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지 말라네요.
18. 사용자 데이터 관리 광고나 기타 사용자 추적을 위해서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활용하는 것도 안된다고 합니다. 또, 사용자의 정보를 서버로 보내 저장할 때는 반드시 사용자에게 알려야 한다네요. 예를 들면, 게임점수를 보낼 때도 사용자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답니다.
이에 대해 사과 농장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수도 있고, 또는 1972년 설립된 애터리(Atari)라는 게임회사보다 전화번호부에서 앞에 나올 수 있는 이름이었기 때문일수도 있고, 또는 비틀즈의 음반 라벨이었던 애플레코드(Apple Records)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을수도 있다고 하네요. (정확히 이로 인한 것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어쨌든 애플은 1989년 애플레코드로부터 상표권 침해 소송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애플 로고에 대한 설명도 나옵니다.
원래 1976년 창업 당시, 애플의 로고는 창업자였던 론 웨인(Ron Wayne)이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아이작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 중력을 생각하는 모양을 나타냈다고 하는데, 이 로고는 로고라기보다는 너무 그림스러웠다고 합니다.
The original logo with Isaac Newton under an apple tree
애플컴퓨터 최초의 모델이었던 "Apple I" 에만 적용된 이 로고는 이듬해, 스티브 잡스가 아트디자이너였던 Rob Janoff 에게 새로운 로고를 요청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디자인된 새로운 애플 로고는 사과 모양에다가 한 입 깨어문(bite) 형상을 한 지금 애플 로고와 같은 형상이었다고 하네요. 컴퓨터에서 정보처리의 단위로 쓰이는 바이트(byte)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를 상징하기 위해 깨어문(bite) 형상을 넣었을 거라고 설명합니다.
게다가 무지개색을 넣었는데, 이 무지개색은 우리가 익히 알던 색순서는 아닙니다.
The rainbow "bitten" logo, used from late 1976 to 1998
로고에 대한 질문에 대해 디자이너였던 Rob Janoff 는,
열정, 지식, 희망과 무질서를 상징하는 로고로서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은 꿈도 못꿀 것이다
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무지개색의 화려한 애플 로고는 1997까지 20년이나 사용되다가 폐기됩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했던 스티브 잡스가 다시 애플로 금의환향한 이후, 단색으로 된 새로운 로고로 변경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데요, 1998년 출시된 PowerBook G3 모델부터 이 새로운 로고가 적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애플 로고와 관련된 몇 가지 흥미로운 루머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를 연상하는 의미가 있다던가, 창업 초기 꽉막힌 문제를 푸느라 끙끙대던 중 누군가 사과를 와작 깨무는 순간에 아이디어가 떠올라 그것을 기념한다던가 하는 것이죠.
그러나 가장 이슈가 되는 설(說)로는, 영국의 저술가 사디 플랜(Sadie Plant)이 펼친 주장입니다. 1997년 저술한 '0과 1 디지틀 여성과 기술'이라는 책에서, 애플의 로고는 영국 비운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을 기린 것이라고 했답니다.
앨런 튜링은 컴퓨터 공학의 아버지라고 불릴만큼 컴퓨터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옥스포드 대 교수였는데요, 동성애자였다고 합니다. 당시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엄격히 금기시되어 있었는데, 동성애 행적이 발각된 앨런 튜링은 강제로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했다고 합니다.(당시에도 호르몬 주사가 있었나요...?...)
어쨌든 그로 인해 청산 과리를 주사한 사과를 베어물고 자살을 하면서 생을 마감한, 이 비운의 수학자인 '앨런 튜링'을 기리는 의미로 베어문 사과를 로고로 선택했다는 내용입니다.
아마 애플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이상, 누구도 그 진실을 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슈가 되고 지속적으로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한, 애플은 굳이 그 내막을 밝힐 이유가 없을 듯 싶네요~ ^^;
특정 위치를 북마크하거나 등록할 수 있는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MatchBook이라는 서비스가 나왔네요.
GPS가 탑재되어 콘텐츠를 위치 정보와 함께 저장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LBS 서비스 영역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2008년 사용자가 특정 위치에 Check-In 하는 방식의 게임요소를 접목해 선보인 포스퀘어의 경우 지난 해 야후로부터 1억 달러에 인수논의가 되었던 바가 있었고, 국내에서는 아임IN, SeeOn, 여행일기 등 역시 지난해부터 다양한 LBS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MatchBook은 조금 차별화를 시도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포스퀘어 형태의 LBS 서비스들이 조금 복잡하고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MatchBook의 경우 영어로 되어 있음에도, 영어에 약한 저에게조차 서비스 이용이 쉽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 설치하고 실행하면 보여지는 화면입니다. 검색어를 넣어 검색을 하거나 또는 [im walking by it] 을 누르면 근처 지명들이 표시됩니다.
현재 위치 근처의 지명들이 표시되는데요, 여기서 현재 있는 위치를 선택합니다.
상세한 정보가 나타납니다. 이 데이터베이스를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합니다..(자세히 보니 홈페이지 하단에 powered by Foursquare 라고 되어 있네요. 데이터베이스는 Foursquare를 쓰는 것 같습니다.) 상세 정보에서는 해당 지역을 북마크하거나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메모도 추가로 작성할 수 있죠.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Tag 기능입니다. 메모를 하면서 태그를 달 수 있는데요, 아래에 보시는 것처럼 이미 있는 태그 들 중에 최대 3개까지만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태그의 종류는 레스토랑, 와인바, 클럽 등 특정 카테고리로 정해져 있네요. 사용자들이 작성하는 태그를 통해 특정 장소들에 대한 분류가 자동으로 이뤄질 것 같습니다.
북마크한 장소는 두 번째 메뉴 [My Bookmarks]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마도 레스토랑이나 맛집, 쇼핑장소 등 나중에 언젠가는 와야겠다 싶은 곳들이나 업무상 자주 찾아오게 되는 곳들을 이렇게 북마크 해놓으면 유용할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폰 지도 앱에도 이렇게 특정 위치를 북마크하는 기능은 있습니다. 저도 업무상 이유로 위치 북마크 기능을 자주 이용하는데, 늘 이용하면서도 불편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장소 북마크에 특화되어 있어서인지, 이용이 쉽고 간단해서 좋습니다.
[Search By Tag] 메뉴에서는 특정 지역과 태그를 교차 검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 레스토랑' 등으로 검색을 하면 관련 결과만 보여주는데요, 아직은 검색 결과가 잘 나오질 않습니다.
아마 이용자가 많아지면 검색결과도 좀 좋아질 듯 싶네요.
지금까지는 LBS 서비스들이 주로 Social 기능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Follow 기능이나 커뮤니케이션 기능 등이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있었죠.
그런데, 이렇게 위치를 북마크하고, 위치를 검색하는 단순한 기능으로 제공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앞으로 사용자가 많아지면 어떻게 변할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요.
페이스북에서 월간 사용자가 2억 5,800만명에 이르며, 기업가치가 1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진 징가는 팜빌(Farmville)이라는 게임으로 유명하죠?
징가의 이번 Wonderland Software 인수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확장되고 있는 모바일 시장에서도 리더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됩니다.
Wonderland Software는 지난 해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GodFinger라는 아이폰용 소셜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회사라고 하네요. Wonderland Software의 개발팀은 징가에서 새로운 모바일 소셜게임을 개발하는 팀으로 활약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지난 12개월동안 12개의 게임 회사를 인수한 징가. 앞으로 어떤 게임을 들고 나올지 눈여겨봐야겠습니다.
원래 이 작품을 의뢰받은 베로키오는 그림의 가장 핵심 인물이었던 예수를 직접 그린 후 나머지 좌, 우에 그릴 천사들은 문하생으로 있던 이들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 문하생 중 하나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요, 또 하나는 보티첼리라니 가히 대단한 문하생들을 두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세계사를 배우게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반드시 한 문제 정도는 출제될만큼 비중있는(?) 인물들이 조수로서 그린 작품인 만큼, 작가들 명성만으로도 일단 작품의 포스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리하여 좌측의 천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리고, 우측에 있는 천사는 보티첼리가 그림으로써 <그리스도의 세례>는 완성됩니다.
The Baptism of Christ (1472-1475) Oil and tempera on wood. Uffizi Gallery, Florence, Italy
이 작품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맘껏 선보이게 되는데요, 이는 그림도 그림이지만 작품에 새로운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충격적'이리만큼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천사를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통상적으로 사용하던 물감인 '계란노른자와 증류수, 식초, 착색가루'의 조합인 '템페라(Tempera)' 대신, 아직 시도되지 않았던 '기름, 착색가루'의 조합인 '유화(Oil)'를 사용함으로써 색의 깊이가 느껴지면서도 색상 변화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했다고 합니다. 또한 예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입체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지는 얼굴을 그려낸 점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스승이었던 베로키오가 이후 다시는 붓을 잡지 않았다고 하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보여준 실력이 얼마나 놀라운 수준이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실제로 그림을 보면, 가장 왼쪽에 있는 천사의 얼굴이 중앙에 있는 예수나 우측에 있는 천사의 얼굴과는 조금 다른 약간은 더 화사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측에 있는 천사는 천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삶에 좀 찌들어 있는 듯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네요... ^^;)
생각해보면 3년에 걸쳐 그려진 그림에, 한낱 문하생이 자신에게 주어진 부분을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 실력을 뽐내려고 시도하는 것은 간떨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실패라도 하거나, 스승의 눈에 기대 이하로 비춰진다면 다시는 그림을 그릴 기회가 없었을 지도 모르니 말이지요...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6년 여간 베로키오의 수하에 있으면서 늘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찾았으며 <그리스도의 세례>는 그런 그에게 최고의 기회였다고 보는 견해가 더 많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홍보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이후의 삶을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잠재력이 처음으로 발현된 작품이라니... 왠지 그림의 한 구석으로 더 시선이 끌립니다. :)
하지만, 최근 협상을 진행중인 가격은 약 1억달러(한화 1,100억원 정도) 수준에서 Bebo라는 SNS서비스를 소유한 Redscout Ventures, Thomas H. Lee Partners, Criterion Capital Partners LLC 등의 유력한 바이어와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The Wall Street Journal에서 보도했다네요.
지난 해에는 마이스페이스가 트위터보다 사용자 유입(트래픽)이 낮아졌다고 하니, 시장 상황은 5년만에 정말 천지차이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넷 서비스는 흥망성쇠의 사이클이 정말 짧은것 같습니다. 뜨는 서비스는 2~3년 만에 가치가 수백, 수천배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1~2년 만에 서비스를 중단하는 단계까지 오기도 하지요.
우리나라만 봐도 한 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낡은 역사 속 서비스처럼 기억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처음으로 온라인 서비스 유료화를 하다가 순식간에 하향길에 접어들었던 프리챌, 한 때 가치가 400억원까지 올라갔던 아이러브스쿨부터, 웹 2.0 붐과 함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동영상 서비스 '엠엔캐스트' 등등
인터넷이라는 기술은 일반인들의 삶과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그 기술의 파급 규모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다른 여타 신기술들이 일상 생활에 확산되는 속도와 비교했을 때 엄청 빠르게 확산되었다고들 하지요.
지금은 인터넷이 없을 땐, 레포트 작성이나 시장 조사를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잘 안날만큼 인터넷이 너무도 당연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그 기술의 확산 속도가 빨랐던 만큼, 인터넷 서비스의 변화 속도도 엄청 빠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발맞춰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의 요구를 먼저 읽고 한 발 앞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기업들만이 살아남고 성장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미술사상 가장 유명한 회화 작품인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3년부터 약 3년 여에 걸쳐 그린 그림으로 죽을 때까지 소장하고 있었던 작품입니다.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모나리자>는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가장 위대한 회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모나리자가 그토록 주목받고 화제가 되는 이유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과연 회화로서의 작품성 때문인지, 아니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인물이 그린 작품이기 때문인지...
<Mona Lisa>
1503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미 회화에 싫증이 난 상태여서 귀족이나 부호들의 초상화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모나리자를 그린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모나리자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호기심이 시작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초상화를 그린 바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초상화로 손꼽히는 <Lady with an Ermine>은 다빈치가 밀라노에 머물던 시절 대공이었던 '루드비코 스포르차'의 애첩을 그린 그림입니다. 여인이 손에 안고 있는 담비는 대공이었던 스포르차를 상징하는 마스코트였다고 합니다.
<Lady with an Ermine, 1489 ~ 1490> Oil on Wood Panel, 54 * 39cm, Czartoryski Museum, Kraków
또, 초기에 그림 작품 <Ginevra de' Benci>라는 작품에서도 배경에 노간주 나무를 볼 수 있는데요, 이 노간주 나무(Juniper or Ginepro)는 그녀의 이름 'Ginevra'를 연상할 수 있는 단서가 되어 줍니다.
<Ginevra de' Benci, 1476> Oil on Wood, 38.8 * 36.7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이처럼 초상화마다 그린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센스있게 단서나 상징을 그려넣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에는 누굴 그린 것인지 알 수 있는 어떤 상징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호기심이 발동되지 않나요? :)
오히려 모나리자는 '누군지 궁금하지? 맞혀볼테면 맞혀봐~'라는 느낌을 주는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기록하는 걸 좋아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6,0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노트 어디에도 그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의도적으로 그녀의 신원을 숨기려 했던 것이리라는 추측을 낳고 있습니다.
초상화였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완성한 후에도 죽을 때까지 본인이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 행동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혹 자신이 평생 그림으로 그려놓고 간직하고 싶은 사람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을런지...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죽은 후 그의 제자였던 Salai에게 인계됩니다. 이후, 1530년 프랑스 왕실의 소장품으로 입궁하게 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말년에 그를 끔찍히도 존경했던 프랑스 왕 '프란시스'는 모나리자를 특별히 좋아하여 그의 목욕탕 벽에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때, 목욕탕 증기의 영향을 받은 모나리자는 표면에 균열이 생겼다고 하니... 프란시스 왕의 애정이 참 야속할 지경입니다.
그 후, 1789년 프랑스 혁명 때까지 약 260여년 간을 프랑스 왕실에 있던 모나리자.
루이 16세와 '빵이 없으면 케익을 드삼~'이라고 개념을 떠나보낸 발언으로 분노를 샀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가 처형을 당하고, 루브르 궁전이 박물관으로 바뀌면서 최초로 시민들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모나리자는 다시 황제의 소장품이 되죠.
나폴레옹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크게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를 침공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겨 놓은 노트 등을 찾아왔다고 하니, 그가 모나리자를 얼마나 아꼈을지는 짐작하고 남을 만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나폴레옹이 실각하고 나서,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그토록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회화가 잘 보존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어쨌든 이후 약 100년여 동안 잘 보관되었던 모나리자는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돌연 사라집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회화 작품이 도난을 당한 일대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훔친 모나리자를 비싼 값에 되팔려던 이탈리아인 도둑은 결국 덜미가 잡히게 되지만, 이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국인 이탈리아에 가있던 모나리자는 정치적 이슈가 되버립니다.
이탈리아 인들은 이탈리아 사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 <모나리자>가 왜 굳이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요구에 결국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오게 되고, 오늘날은 개인 경호원과 공기 정화 시스템, 3중 방탄 유리로 보호된 콘크리트 박스 속에서 안전하게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모나리자는 과연 누구를 그린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도 많은 추측이 난무했었지만, 수세기가 흐른 후 밀라노의 정부기록보관소에서 모나리자와 관련된 기록이 발견되면서 일단락됩니다.
바로 1525년 살해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 Salai의 재산 목록에 'La Giaconda'라는 이름의 그림이 있고, 'Lisa del Gioconda는 모나리자다'라고 분명히 밝힌 기록을 찾은 것입니다. 이로써 수세기 동안 호기심을 자아냈던 모나리자에 관한 의문 한 가지가 해소됩니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궁금증들이 남아있습니다.
Lisa del Gioconda는 결혼한 여성이었는데, 왜 결혼 반지는 끼고 있지 않은지... 정숙해 보이지 않게 머리를 풀어헤친 이유는 무언지... 장신구를 착용하는 게 일반적이던 시절 왜 장신구 하나 없는지... 손짓이나 손가락 하나에도 세심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배경에 넣은 그림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모나리자의 저 신비한 미소를 그려넣은 이유는 무엇인지...
어느 날, 그림을 더이상 그리지 않기로 결심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한 여인이 찾아왔다. 다빈치는 순간 그녀의 모습에서 어렸을 적 기억 속 어머니의 인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다시 그림에 대한 열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초상화를 그리자.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영원히 간직하자... 어렸을 적, 밖에서 놀다 들어와 어머니를 불렀을 때, 돌아보고 인자하게 미소지어 주시던 그 모습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린 이유, 초상화를 다 그린 후 주지 않은 이유, 이 그림을 그토록 아낀 이유 등 이제는 어떤 것도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추정해볼 수 있을뿐...
모나리자는 이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과 깊이 연관되어 많은 호기심을 야기하고 관심의 집중이 되어 왔지만, 단지 그런 관심만이 <모나리자>를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원래 모나리자를 그리던 시절만 해도, 초상화는 통상 옆모습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파격적으로 비스듬한 자세로 쳐다보는 형태(일명 '콘트라포스트 자세')의 초상화를 그렸던 것입니다. 이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르네상스를 빛낸 당대 유명 화가들이 이런 구도를 따라했다고 하니, 얼핏보면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갈법한 구도 하나에서도 다빈치의 천재성과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모나리자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어렸을 때 사람 얼굴을 그릴 때는 주로 옆모습을 그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코가 삐죽 올라와 있는 모습을 앞모습으로 표현하는 것보단 옆에서 본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더 쉬웠으니까요.
어쩌면 다빈치의 초상화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은 크게 놀라워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정면에서 그려도 코가 올라온 것처럼 느끼게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경험했을 테니까요~
만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었다면, 아직도 우리는 '초상화는 옆모습을 그리는 거야'라고 당연시하며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그림이 창조되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던 우리 모든 국민들은, 그림의 탄생을 가져다 준 높은 이상의 수호자이자, 상속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이 뛰어난 예술적인 상상력과 솜씨로써의 업적일 뿐만아니라, 그것의 창조자가 우리 문명의 중심적인 의미를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 JOHN F. KENNEDY, 1962년 미국 순회 전시회에서
모나리자는 그 태어나던 시기에 누렸을 회화 작품으로서의 우수성 뿐 아니라 이후 500년간 후세가 가졌던 관심과 호기심, 작가의 삶에 대한 인류의 경외심 등이 녹아들면서 그 가치가 더욱 새로워지며 작품의 의미가 더해진, 그리고 계속 더해지고 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짜르트(Leopold Mozart)'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교육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모짜르트가 그토록 추앙받는 음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정 환경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모짜르트는 아버지가 누나 '난넬(Nannerl)" 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법을 터득하는 등 어려서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가 8살 되던 1762년부터 그의 가족은 유럽 지역을 여행합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모짜르트는 위대한 음악가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1764년부터 1년간 런던에서 머물며 만난 바흐(Johann Christian Bach)는 모짜르트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라고 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모짜르트는 1773년부터 잘츠부르크 궁중 악단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이 때 그는 '교향곡, 소나타, 현악 4중주, 세레나데,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게 되며, 그가 21살이 되던 1777년에는 피아노 협주곡 K.271을 작곡하여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모짜르트는 잘츠부르크 악단에서의 낮은 보수와 여행을 자주하는 모짜르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대주교와의 갈등으로 인해 1777년 8월 악단을 사직하고, 파리에 머물게 됩니다. 파리에서 앨로시아 베버(Aloysia Weber)라는 가수와 한 때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파리에 머물던 모짜르트는 1781년 오스트리아의 빈(Wien)으로 옮겼으며, 이듬 해 8월엔 콘스탄체 베버(Constanze Weber)와 결혼을 합니다. 또 1782년엔 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출(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후 모짜르트는 자신이 쓴 피아노 협주곡을 스스로 지휘하고 협연하게 됩니다.
빈에 머물던 모짜르트는 당시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년 3월 31일 - 1809년 5월 31일)과도 어울리게 되는데, 당시 하이든은 모짜르트의 아버지에게 "하느님 앞에 맹세하건대 당신의 아들은 내가 들어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곡가입니다. 그에게는 감각이 있고, 게다가 그는 가장 뛰어난 음악적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극찬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모차르트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프리메이슨 단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 피리의 주제는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네요.
살아 생전 다양한 장르에서 약 600여곡의 작곡을 했던 모짜르트는 그의 미완성곡 '레퀴엠(Requiem)'을 작곡하던 1791년 12월 5일, 35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칩니다.
'강호동의 리얼로망스 연애편지'의 마지막 부분... 남자 출연자가 여자 출연자한테 꽃을 줄 때 흘러 나오던 노래입니다.
80년대 초 등장한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룹 Air Supply의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지금 들어도 전혀 옛날 노래처럼 올드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런 노래들을 명곡이라고 하는 거겠죠... 시간을 뛰어넘는...
뮤직 비디오를 보니, 화면은 확실히 올드하네요 :)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sung by Air Supply
I know just how to whisper / And I know just how to cry I know just where to find the answers And I know just how to lie (어떻게 속삭이는지 어떻게 울어야 할지도 알고 어디서 대답을 찾아야 할지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 할지도 알아요)
I know just how to fake it / And I know just how to scheme I know just when to face the truth And then I know just when to dream (어떻게 속임수를 쓰고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도 알고 언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지 언제 꿈꿔야 할지도 알아요)
And I know just where to touch you / And I know just what to prove I know when to pull you closer / And I know when to let you loose (당신 어디에 손길을 미쳐야 할지 무엇을 증명해야 할지도 알고 당신을 언제 가까이 끌어 당기고 언제 놓아주어야 할지도 알아요)
And I know the night is fading / And I know the time's gonna fly And I'm never gonna tell you Everything I gotta tell you But I know I gotta give it a try (밤이 저물어 가는 것도 알고 시간이 흘러가 버릴거라는 것도 알죠 내가 해야 할 말을 모두 다 말하진 않겠어요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 한다는 건 알아요)
And I know the roads to riches / And I know the ways to fame I know all the rules And then I know how to break'em And I always know the name of the game (어떻게 부자가 되는지 어떻게 명성을 얻는지 알아요 규칙도 모두 알고 있고 어떻게 그 규칙을 어기는지도 알아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지만)
But I don't know how to leave you / And I'll never let you fall And I don't know how you do it /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어떻게 당신을 떠나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당신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어요 당신이 어떻게 사랑을 만들어 내는지 정말 알 수가 없군요)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없었던 사랑이 어떻게 사랑이 생겨날까요)
Every time I see you All the rays of the sun are streaming through the waves in your hair And every star in the sky is taking aim at your eyes like a spotlight (당신을 볼 때마다 태양의 모든 빛은 당신의 머리 결을 따라 흐르고 하늘의 모든 별들은 조명을 비추듯 당신의 눈을 향하고 있어요)
The beating of my heart is a drum And it's lost and it's looking for the rhythm like you You can take the darkness from the pit of the night and turn into a beacon burning endlessly bright (드럼처럼 고동 치는 내 심장은 이제 그 소리를 잃고 당신과 같은 리듬을 찾고 있어요. 당신은 칠흑같은 밤의 어둠을 영원토록 환하게 빛나는 횃불로 바꿀 수 있어요)
I've gotta follow it Cause everything I know Well it's nothing till I give it to you (난 그 횃불을 따라가겠어요 내가 가진 모든 것도 당신께 드리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I can make the runner stumble / I can make the final block And I can make every tackle at the sound of the whistle I can make all the stadiums rock (난 주자를 쓰러뜨릴 수도 있고, 마지막 방어를 할 수도 있어요 호루라기 소리에 태클을 가할 수도 있고 온 경기장을 울리게 할 수도 있어요)
I can make tonight forever / I can make it disappear by the dawn And I can make you every promise that has ever been made I can make all your demons be gone (오늘밤을 영원하게 할 수도 있고 새벽이면 밤을 몰아낼 수도 있어요 당신께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약속을 할 수도 있어요 당신에게서 악령를 몰아낼 수도 있어요)
But I'm never gonna make it without you / Do you really want to see me crawl And I'm never gonna make it like you do /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하지만 당신이 없다면 하지 못해요 당신은 정말 내가 애걸하는 걸 보고 싶나요 난 당신처럼 할 수는 없을 거에요 아무 것도 없이 사랑을 싹트게 하다니...)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없었던 사랑이 어떻게 사랑이 생겨날까요)
저는 1992년 개봉했던 영화 <보디가드(Bodyguard)>를 통해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라는 가수를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히트하면서, 영화의 OST 타이틀 곡이었던 'I will always love you'는 당시 TV에서 애로틱 or 멜로 장면만 나오면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CF 음악으로도 많이 쓰였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주인공 휘트니 휴스턴이 I will always love you를 부르기 전 가장 히트시켰던 곡이 바로 'Greatest Love of All' 입니다.
1986년 4월에 발매된 앨범 'Whitney Houston'에 실린 곡인데요, 재밌는 건 I will always love you나 Greatest Love of All 이나 모두 휘트니 휴스턴이 리메이크로 부른 곡인데, 둘 다 원곡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휘트니 휴스턴의 가창력 덕분일지도 모르겠네요.
I believe the children are our future Teach them well and let them lead the way Show them all the beauty they possess inside Give them a sense of pride to make it easier Let the children's laughter remind us how we used to be
Everybody searching for a hero People need someone to look up to I never found anyone who fulfill my needs A lonely place to be and so I learned to depend on me
I decided long ago, never to walk in anyone's shadows If I fail, if I succeed At least I'll live as I believe No matter what they take from me They can't take away my dignity because the greatest love of all is happening to me
I found the greatest love of all inside of me The greatest love of all is easy to achieve Learning to love yourself It is the greatest love of all
I believe the children are our future Teach them well and let them lead the way Show them all the beauty they possess inside Give them a sense of pride to make it easier
Let the children's laughter remind us how we used to be I decided long ago, never to walk in anyone's shadows If I fail, if I succeed At least I'll live as I believe No matter what they take from me
They can't take away my dignity because the greatest love of all is happening to me
I found the greatest love of all inside of me The greatest love of all is easy to achieve Learning to love yourself It is the greatest love of all
And if by chance, that special place that you've been dreaming of Leads you to a lonely place Find your strength in love
현재는 Atlanta, Austin, Dallas, San Diego, San Francisco 등 5개 주요 지역의 상품정보만 제공하는데, 지역은 점차 늘려나갈 거라고 하네요.
페이스북은 6억명이 넘는 사용자 기반에다가, 사용자의 프로필 및 활동 이력, 위치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존 소셜커머스 업체들보다 훨씬 유리한 환경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소셜커머스에서 주로 판매하는 제품이 '맛집쿠폰, 마사지'등 지인들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상품이 주를 이루는만큼, 페이스북딜에서의 상품구매 이력이 뉴스피드에 공유되면 지인들의 구매 유도에도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페이스북딜의 상품은 자체적으로 영업하여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레스토랑에 포커싱된 OpenTable, 여성용 상품에 특화된 PopSugar City, 이벤트 등에 특화된 Zozi 등의 업체와 제휴를 통해 공급한답니다.
향후 페이스북딜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해, 국내 시장 진출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되면, 국내 소셜커머스 업체들과의 제휴나 인수가 이뤄질수도 있겠네요.
국내에서는 요즘 창업초기 마케팅 등의 용도로 소셜커머스를 활용한 업체들이 실제로는 지속적인 고객 유치가 안된다, 마케팅 효과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등의 불만들도 제기한다고 하는데, 페이스북은 업체별로 고객을 응대할 수 있는 페이지 개설을 통해 이런 부분들에 대한 개선책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09년 12월부터 아이폰을 사용했으니, 아이폰을 이용한지는 어느 덧 16개월이 다 지났는데, 이제서야 아이튠즈를 이용해 아이폰 벨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둥둥둥둥둥둥둥...(뒷북치는 소리)
블로그 포스팅을 보면서 따라해봤는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네요. 시간이 좀 지나면 또 잊을 것 같아서 벨소리 만드는 과정을 정리해봤습니다.
1. 먼저, 아이튠즈(iTunes)를 실행시킵니다. 음악 카테고리에서 벨소리를 만들 음악을 선택합니다.
저는 케이윌의 "가슴이 뛴다"라는 곡을 선택했습니다.
2. 선택한 곡에서 마우스 오른쪽 클릭을 하세요. 오른쪽 클릭 후 [등록정보(Get Info)] 버튼을 누릅니다.
3. 선택한 음악에 대한 상세 정보를 보여주는 팝업창이 나타날텐데요, 여러 메뉴 중 5번째에 있는 [옵션(Option)] 메뉴를 선택합니다.
옵션 메뉴를 보시면 중간 즈음에 [시작 시간(Start Time)], [정지 시간(Stop Time)]이라는 항목이 있는데요, 선택한 음악 파일 중 벨소리로 만들 부분을 시간으로 작성하는 것입니다. 벨소리로 만들 수 있는 최대 길이는 39초까지라고 하니 그 길이 내로 작성하시면 됩니다.
다만, 39초 이상으로 하셔도 알아서 최대 39초에서 파일을 자른다고 하네요.
저는 '가슴이 뛴다'의 35초부터 벨소리로 되도록 세팅을 했습니다. 시간 입력을 하셨으면, 이제 OK 버튼을 누릅니다.
4. 아이튠즈 상단의 [고급(Advanced)] 메뉴를 선택해 5번째에 있는 [AAC 버전 생성(Create AAC Version)]을 클릭합니다.
5. 그러면 바로 39초짜리 음악 파일이 만들어집니다. (최상단에 같은 파일명으로 39초짜리 음악이 추가되었습니다)
6. 이제 이 음악 파일을 선택해서 바탕화면으로드래그해 파일을 복사합니다. 복사한 파일의 확장자를 현재 .m4a 에서 .m4r 로 변경합니다. (참고로 m4a는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듣는 mp3같은 음악파일 형식인데 반해, m4r 은 아이폰에서 '벨소리'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확장자입니다.)
확장자를 바꾸면 사용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세지가 보여지는데, 여기서 그냥 "예"를 클릭합니다.
※ 간혹 확장자가 보이지 않는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운영체제(Windows)의 설정 때문에 그럴 텐데요, 확장자가 보이지 않으시면 다음과 같이 하시면 됩니다.
먼저, 아무 윈도우 창에서 상단 메뉴의 [구성]을 선택한 다음, [폴더 및 검색 옵션]을 클릭합니다.
팝업 창이 나타나면, [보기] 메뉴을 선택합니다.
아래쪽에 있는 고급 설정에서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다 보면, [알려진 파일 형식의 파일 확장명 숨기기]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 항목의 체크박스가 체크되어 있지 않아야 확장자 명이 보여집니다.
7. 이제 .m4r로 변경한 파일을 다시 아이튠즈로 드래그해서 옮깁니다. 그러면 좌측 [벨소리(Ringtone)] 메뉴에 음악파일이 추가된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아이폰을 동기화하시면, 아이폰에 새로운 벨소리가 들어가 있는 걸 보실 수 있으실거에요.
[동기화 전] 아이폰 설정앱 > 사운드 > 벨소리
[동기화 후] 아이폰 설정앱 > 사운드 > 벨소리
※ 혹시 아이튠즈에서 '벨소리' 메뉴가 보이지 않으시나요?
아이튠즈 상단 좌측에 [편집(Edit)] 메뉴를 누른 후 [기본설정(Preference)]를 선택하면 팝업창이 나타납니다. 서비스 메뉴 중 벨소리(Ringtones)가 활성화되었는지 체크해보세요.
※ 동기화했는데도 벨소리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다음을 확인해보세요.
아이폰을 선택한 후 상단 메뉴 중 벨소리(Ringtones) 메뉴의 Sync Ringtones 가 체크되어 있어야 벨소리가 폰으로 복사됩니다.
저는 이것저것 삭제하지 않고 모아놓은 여러가지 동영상이 2TB가 넘게 있습니다. 지우기는 왠지 아깝고, 용량은 너무 많이 차지하고...
그래서 필요한 부분만 잘라서 쓰면 좋겠다 싶어 여러가지 동영상 편집 툴을 살펴봤었는데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폰4 최강업무술"이라는 책에서 조금 손쉽게 동영상을 잘라낼 수 있는 프로그램 "Daum 팟인코더" 보고 바로 해봤는데 정말 초보자도 쉽게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이더라구요. 원래부터 Daum 팟인코더는 동영상 인코딩용으로 써왔지만, '동영상편집'이 이렇게 쉽게 되는 기능도 있는지는 몰랐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네요.
간단히 동영상을 자르는 방법을 살펴보시겠습니다.
우선은 Daum 팟인코더를 다운로드 받아 설치하신 후 실행시켜 주세요.(설치방법을 잘 모르시겠으면 요기를 보세요)
상단의 [동영상편집] 탭을 눌러주세요.
[불러오기] 버튼을 누른다음 자르고 싶으신 동영상을 선택합니다.
동영상을 선택하면 파일 목록에 동영상 파일명이 나타납니다. 해당 파일을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좌측 플레이어 화면으로 끌어보세요.
동영상 플레이어 하단 좌측에 [시작] 버튼과 [끝] 버튼을 누르면 타임라인에 각각 표시가됩니다. 각각의 버튼을 드래그해서 자를 부분을 선택하세요.
선택을 하신 후 [삽입] 버튼을 누르면 자를 부분의 동영상파일만 하단 타임라인에 들어갑니다.
동영상을 여러개 불러온 다음 똑같은 방식으로 하시면 여러 동영상을 합칠 수도 있습니다. 다 정리가 되셨으면 우측 하단의 [인코딩시작] 버튼을 눌러주세요.